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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머리를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 클라우디스에게 일어난 실제적 사건!

 

2000년 전 이성적인 머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로마 군인 클라우디스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ㅣ영화는 시작한다.  주인공 클라우디스는 자신이 처해진 현실에 따라 위상사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도맡아 하며 정확히 수행하는 냉철한 군인이다. 그야말로 차가우리만치 이성적인 사고로 삶을 대하는 주인공 이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믿지 못하며 자기의 사고와 신념이 그를 이끌어간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성 없는 것에는 관심과 시선을 일체 차단하며 지내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클라우디스에겐 종교는 나약한 자들, 즉 현실 도피와 같은 사이비 종교와 같이 취급된다

그는 오직 눈앞에 펼쳐진 명예와 권력에 대한 야망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 속 이야기와 다르지 않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클라우디스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세상 존재의 가치가 각각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클라우디스에게도 꿋꿋이 지켜나가는 그의 신념과 의지와 다르게 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의 직전에 이르면 누리던 모든 것들이 끝이 난다. 늘 죽음을 가까이 대하는 그에게 죽음이란 자주 접하지만 실은 굉장한 두려움으로 존재한다. 반복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인공. 또 다른 임무를 맡게 된다. 그 임무는 예수에 관한 것. 본인이 메시아라 칭하는 예수가 신성모독으로 인해 십자가형에 처하게 되는데 그의 시체가 있었던 돌무덤이 비어있는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가 다시 부활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이번 일은 그에겐 피곤한 일일뿐이다. 그런데 이 시건은 그에게 또 다르게 다가오는 사건이 생기게 된다. 클라우디스에게 이번 사건이, 십자가형의 주인공 예수가 그의 생에 개입되는 순간이다.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사라지게 된 사건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라 생각한 클라우디스 예수의 제자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제껏처럼 이일을 빠른 시일 내에 수행한 후에 이곳을 벗어나 그의 야망인 장소 로마로의 입성을 꿈꾸기 때문이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 이 사건은 총독인 '빌라도'에게 신뢰를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까지 놓이게 된다. 본격적으로 해결을 해나가는 클라우디스. 시신이 없어진 날 보초를 서던 이들의 보았던 일들을 진술하면서 보였던 두려움으로 인한 거짓 증언에 의문을 품은 주인공. 게다가 시신을 찾기는커녕 일파만파로 퍼지는 예수를 보았고 만났다는 사람들의 소문들. 그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을 하나하나 잡아다가 신문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았으나 믿을 수 없는,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그는 죽었던 예수(JESUS)였다

죽은 예수를 다시 만났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 중 하나인 여인 마리아.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다. 도저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망언을 하면서도 그 진술의 증거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말하는 당당한 그녀의 말이 왠지 마음에 쓰인다.  마리아뿐만 아니라 '바돌로'라고하는 진술자의 말은 더욱 구체적이다. 다시 살아난 예수와 대화뿐 아니라 같이 산책을 했다는 것. 게다가 그는 예수를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말한다. '바돌로' 역시 마리아와 같이 그를 위하여 죽음까지도 내놓을 수 있다고 동일한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을 들은 클라우디스는  그 진술의 대가로 예수와 동일한 십자가형을 경험하게 해 주겠다며 그를 협박하며 예수의 거처를 묻는다. 협박에도 당당한 진술자들. 그러던 중. 예수의 추종자들의 본거지를 발견했다는 제보를 통해 그곳을 찾아간다. 역시 그곳에 예수의 제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곳에 그가 있다! 분명 죽었던 예수! 꿈인 듯 현실인 듯 혼란에 빠진 클라우디스. 분명 그(예수)는 죽었었다! 그가 살아서 제자들 사이에 그의 눈앞에 있다. 그런데 또다시 마법처럼 홀연히 사라진 예수. 제자들은 갑자기 사라진 예수에 대해 이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시 예수를 찾아 기쁜 마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그의 추종자들. 그들을 뒤쫒는 클라우디스. 왜? 그가 분명히 목격한 죽었다 다시 살아난 그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그를 만났다! 그는 살아있다. 아니 죽고 다시 살아난 예수. 그를 박해하는 자들의 편에 서있던 그에게 예수는 정죄하지 않는다. 그를 이해하며 그의 이름(클라우디스)까지 아는 예수. 클라우디스는 그동안 그를 묶고있는 죽음의 두려움을 죽고 다시 살아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순간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며 소망함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복음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BC와 AD를 가르는 시점인 예수가 죽고 부활한 2000년 전의 성경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누군가에겐 픽션 영화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실제의 이야기가 되어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가며 복음을 통해 영원한 가치에 대해 소망하는 삶은 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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